요한 요한슨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분류
출생 | |
사망 | |
직업 | |
레이블 | 도이치 그라모폰, 4AD, Touch |
사이트 | |
1. 개요 [편집]
독일에서 주로 활동했던 아이슬란드 출신 작곡가로, 드니 빌뇌브 감독과의 협업으로 유명했던 영화 음악가였다.
밴드를 하다가 솔로로 데뷔. 인디 레이블에서 독집을 낸 적이 있다. 네오 클래시컬 음악으로 유명했으며 매니아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작곡자였다. 아이슬란드 특유의 무겁고 신비로운 음악으로 비요크나 시규어 로스나 막스 리히터랑 묶여서 소개되곤 했다. 의외로 영화 음악가 데뷔는 2000년으로 오래된 편이다. 드니 빌뇌브를 만났을 당시에도 베테랑이었던 사람. 다만 아이슬란드와 북유럽 위주로 활동해 이 시절은 그리 유명하지는 않다.
시카리오의 음악을 맡아 큰 호평을 받았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되었다. 후에도 또한 호평을 받은 컨택트의 영화음악을 맡아 드니 빌뇌브의 전담 음악가로 통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음악도 맡을 예정이었으나 영화의 분위기와 그의 평소 작곡 스타일, 그리고 반젤리스의 스타일과는 이질적이라는 판단 하에 하차하였다.(참고로 그 후 한스 짐머 감독이 맡아서 했다.) 그러나 젊은 나이로 영화음악계의 큰 기대주였던 그는 2018년 2월 9일 갑작스럽게 별세하였다. 사인은 코카인 과다복용이라고 한다. #
드니 빌뇌브 이외에도 2012년 이후 로예의 영화음악을 전담하기도 했다.
요한 요한슨, 영화음악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
밴드를 하다가 솔로로 데뷔. 인디 레이블에서 독집을 낸 적이 있다. 네오 클래시컬 음악으로 유명했으며 매니아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작곡자였다. 아이슬란드 특유의 무겁고 신비로운 음악으로 비요크나 시규어 로스나 막스 리히터랑 묶여서 소개되곤 했다. 의외로 영화 음악가 데뷔는 2000년으로 오래된 편이다. 드니 빌뇌브를 만났을 당시에도 베테랑이었던 사람. 다만 아이슬란드와 북유럽 위주로 활동해 이 시절은 그리 유명하지는 않다.
시카리오의 음악을 맡아 큰 호평을 받았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되었다. 후에도 또한 호평을 받은 컨택트의 영화음악을 맡아 드니 빌뇌브의 전담 음악가로 통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음악도 맡을 예정이었으나 영화의 분위기와 그의 평소 작곡 스타일, 그리고 반젤리스의 스타일과는 이질적이라는 판단 하에 하차하였다.(참고로 그 후 한스 짐머 감독이 맡아서 했다.) 그러나 젊은 나이로 영화음악계의 큰 기대주였던 그는 2018년 2월 9일 갑작스럽게 별세하였다. 사인은 코카인 과다복용이라고 한다. #
드니 빌뇌브 이외에도 2012년 이후 로예의 영화음악을 전담하기도 했다.
요한 요한슨, 영화음악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
[1] '요한슨' 이라고 읽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슬란드어에서 o는 ㅗ 발음이 나므로 '요한손' 이라고 읽는 게 맞다. 하지만 2018년 7월 29일 구글 검색 결과 '요한 요한슨' 이 약 33,200개로 약 8,590개인 '요한 요한손' 보다 많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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